월세 7만원 시장가게에서

아기 김치 브랜드를 만들기까지


👩‍👦 얼라맘마 김라희 대표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살아가고 있는 36살 워킹맘이다. 우연히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아기 김치 만들기'가 나의 생업이 되어, 가게 이름도 부산에서 부르는 '아이'의 사투리인 '얼라'를 넣어 '얼라맘마'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시작했다. 
그 당시 아기 김치 자체가 생소하였고, 우리 가게 외에는 아기 김치 전문점이 없었기에 "얼라들 김치 씻어 주믄 되지 파는 것도 있네." 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고춧가루 대신 파프리카로 담그는 아이 김치는 분명 많은 분들이 알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작게 시작한 가게가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면서 하루에 3시간씩 자며 일을 이어나갔다. 그때 둘째 아이는 태어난 지 6개월도 되지 않았다.
'얼라'라는 말이 생소한 지역에서는 부산 사투리로 어린아이라는 뜻까지 함께 관심을 보였다. 잠과 여가 생활을 포기하고 직접 발로 뛴 몇 년 간 많은 소비자들에게 얼라맘마를 알리게 되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반찬가게가 아닌 브랜드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작년 연 매출 10억 이상이 되며 더 이상 매장에서 만들 수 있는 양이 한계를 넘어 올해부터는 제조업으로 전환하고 9월에는 해썹인증까지 취득했다.
얼마 전, 생애 처음으로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엄마의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 출전신청서 갓생스토리 중 발췌 -
Q. 갓생픽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갓생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몰랐어요. SNS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고 나서 뜻을 찾아봤는데요. 찾아보니 나 정도면 갓생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부심이 한창 딱 차있던 단계라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저는 제 이야기로 강연을 해보고 싶어요. 제 상황이 저만의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저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던 분이나, 혹은 저처럼 결혼하고 경력이 단절되신 분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Q. 출전 신청서에 적어주신 갓생스토리가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구체적으로 좀 더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인생을 살면서 갓생을 살고 있다고 느낀 것이 두 번이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한 부모 가정으로 여동생이랑 저를 키웠어요. 저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학교랑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요. 어머니가 거의 노동을 하기 힘들 정도로 몸을 혹사 시켜서 밤마다 하반신이 마비되고 하는 시절이 있었거든요.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 정말 아기였는데, 집의 생활비를 채우자는 목표로 참 부지런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지금의 갓생을 살게 된 건 결혼을 하고 아이들 낳고인데요. 둘째가 돌 되기 전부터 2017년 4월에 창업을 시작했어요. 
사하구에 감천 전통시장이라고 있는데요. 거기에 한 3평 정도 되는 공간이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7만 원짜리 점포가 났었어요.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아이들 먹는 반찬가게를 하려고 했습니다.
저희 첫째가 뭘 너무 안 먹는 아이였어요. 밥 보면 도망 다니고, 과일 보면 도망 다니고 하다 보니 애들이 변비가 오더라고요. 유산균도 안 먹고. 그때 항창 김치 유산균이 유명할 때였어요. 김치를 먹이려고 했는데, 아이들이다 보니 파프리카로 안 맵게 만들었어요. 아이들이 잘 먹더라고요.
그래서 아기 반찬 가게를 하기 전에 이거 먼저 해보자라고 해서 시작했는데요. 다른 반찬을 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팔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사업장 이름이 '얼라맘마'인데, 부산 사투리를 담아서 만든 이름이거든요.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는 이름을 잘 모르시긴 하는데, 부산에서 계속 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애기들 김치 씻어주면 되지 누가 이걸 사서 먹이노'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이런 걸 파는 곳이 없어서 검색하면 저희 제품만 나왔거든요. 아기 깍두기, 김치를 검색해도 레시피도 잘 안 나오던 시기였고, 그런 기회 때문에 잘될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는 판매처를 전국으로 확대하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기가 아직 돌이 안됐는데 시부모님이 타던 자동차를 물려받아서 그 차를 타고 행사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전국 방방곡곡을 정말 열심히 다녔습니다. 아이들이 잘커준 게 고맙고 미안하더라고요.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제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코로나가 끝나면 오프라인이 시들고 온라인으로 갈 건데 지금 많이 알려야 온라인 택배가 많이 나갈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중에 없는걸 개발해서 팔아보면 또 반응이 좋아요. 저 혼자 다 하거든요, 영업도 하고 개발도 하고 일도 하고. 반응이 좋으면 또 벤치마킹을 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아이디어가 뺏기는 것 같아서 화가 많이 났는데, 지금은 오히려 인정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이사를 4번 하면서 매장이 아니라 제조업까지 할 수 있게 성장한 겁니다.
Q. 에너지가 굉장한데, 스스로 동기부여를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안될 거라는 불안감은 없었어요. 소비자 반응을 보고 시작했으니까요. 깍두기랑 배추가 섞인 신제품을 낼 때도 어머니를 포함해서 모두가 반대했어요. 각각 따로 사지, 혼합된 걸 사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는데요. 그 제품이 다른 제품 보다 2배 이상으로 팔리더라고요. 무조건 된다는 확신을 가지면 하는 것 같아요.
Q. 갓생을 살면서 얻어낸 큰 성과가 있었다면요?
지금 이뤄낸 모든 게 성과라고 생각해요. 아기들이 대부분 김치가 맛없다고 생각하잖아요. 판매를 못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땐 남은 건 다 나눠드렸어요. 40개가 남든 100개가 남든 아기 엄마들에게 다 나눠주고 왔어요. 그게 다 자양분이 되더라고요. 본인 아기가 안 먹더라도 소개를 해주더라고요. 당장 보는 손해는 크게 의미를 안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Q.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하셨는데?
"하면 된다"에요. 저는 '하면 된다'라는 말을 처음엔 우습게 생각했어요. 근데, 정말 하면 다 돼요. 로또도 사야 당첨이 되잖아요. 뭐든 시도 해봐야 되는 거 같아요. 
저희는 행사를 가면 아이들이 얼라 김치를 싫어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어머님에게 먹어보라고 5종을 다 권해드려요. 설명을 다 안 듣고 가고 싶어 하셔도 붙잡고 설명을 빠르게 요령 있게 해드려요. 그걸 소극적으로 하면 손님은 그냥 가버리거든요. 가는 동안에도 "이건 어디서든 언제 구매할 수 있으니 돌아보시고 오세요" 하고 보내요. 그냥은 안 보내는 거죠.  거절당하는 것에 겁먹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Q. 앞으로의 이루고 싶은 목표 또는 꿈이 있다면요?
처음 딱 장사를 시작했을 때 첫날 15만 원을 벌었는데 그게 아직도 생각나요. 지금은 몇 배를 팔았지만 그때를 계속 생각하는 것 같아요. 초심이에요.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요.
엄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라고 애들이 물어보는데, 제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나는 유통업의 어머니가 될 거야"라고요. 저는 빚이 없이 시작했거든요. 매장을 크게 늘리면서도 빚은 없었어요. 제조업으로 오기까지 생각하는 대로 다 해냈고, 해썹 인증까지 받았아요.
작은 시장에서 반찬가게로 시작했지만,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유아식품 전문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부산에서 브랜드를 만든다는 게 뭐 신발, 어묵 등 이미 특성화가 된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지원도 많은데, 사실 저는 지금까지 지원 하나도 없이 왔어요. 부산에서 이런 걸 하려는 분들에게 제가 멘토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여기서 살고 있고, 부산의 향토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제대로 된 식품을 만드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